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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3.27

가상자산거래소, 공공 인프라인가?

최근 가상자산(디지털자산) 업계의 핵심 쟁점은 금융위원회가 추진 중인 '디지털자산거래소 대주주 지분 제한(20% 상한)' 논의다. 자본시장법상 대체거래소(ATS)에 적용되는 소유분산 규제를 디지털자산거래소에도 일괄 준용하겠다는 구상이다.

 

당국은 디지털자산거래소 역시 한국거래소나 넥스트레이드와 같은 '금융시장 인프라'라는 논리를 전개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전제가 법리적으로 타당한지 짚어볼 필요가 있다.

 

 

'공공 인프라'의 법적 지위와 요건 

단순한 이용자 규모의 방대함이 해당 기관에 공공 인프라라는 법적 지위를 부여하지는 않는다. 법적으로 공공성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국가가 설립에 직접 관여하거나 공적 기능을 위임해야 하며, 이에 상응하는 통제 및 책임 구조를 갖춰야 한다. 즉, 판단의 기준은 이용자의 수가 아닌 '국가와의 공적 관계'에 있다.

 

한국거래소는 과거 증권거래법 시절부터 법정 기관으로서 기능해 왔다. 대체거래소(ATS) 역시 자본시장법에 따른 금융위원회의 인가를 요하며, 설립 요건부터 소유분산이 강제된다. 태생적으로 공적 질서에 편입된 기관인 것이다.

 

반면, 디지털자산거래소는 출발선이 상이하다. 특정금융정보법에 따라 가상자산사업자(VASP)로 신고 요건만 갖추면 영업이 가능하며, 국가로부터 어떠한 공적 기능도 수탁한 바 없다. 순수 민간 자본과 기술로 형성된 시장이다. 법적 공공성이 결여된 대상에게 공공성을 전제로 한 강도 높은 규제를 소급 적용하는 것은 논리적 모순이다.   

 

 

대체거래소(ATS) 규제 준용의 타당성 결여 

규제 당국이 준용 근거로 삼는 자본시장법 제78조 제5항은 ATS에 대해 특수관계인을 포함, 의결권 있는 주식의 15% 초과 소유를 금지하고 있다.

 

이 규제의 입법 연혁을 살펴보면, 2005년 증권·선물·코스닥 거래소가 주식회사 형태로 통합되는 과정에서 기존 회원제 하의 참가권과 소유권이 분리됨에 따라 특정 주체의 거래소 독점 우려가 제기된 바 있다. 즉, 소유분산 규제는 독점적 '공적 기관의 사유화'를 방지하기 위한 목적에서 도입된 것이다.

 

디지털자산거래소에는 이러한 전제가 성립하지 않는다. 특정 회원사 구조가 존재하지 않으며, 불특정 다수가 참여하는 개방형 플랫폼으로서 민간 스타트업에서 출발했다. 공적 기관의 사유화 방지가 아니라, 사기업에 사후적으로 공공성을 부여한 뒤 지분 분산을 강제하는 격이다.

 

이는 민간 자본으로 개설된 도로에 통행량이 증가했다는 이유로 사후에 국도로 지정하고, 원소유자에게 소유권을 포기하라는 요구와 구조적으로 동일하다.   

 

 

이용자 보호와 지분 제한의 비례성 원칙 

금융당국의 문제의식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거래소가 막대한 규모의 고객 자산을 수탁하고 상장 심사 권한을 독점하는 상황에서, 그간의 내부통제 시스템이 미흡했던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최근 발생한 빗썸의 BTC(비트코인) 약 62만개(약 60조원) 오지급 사태는 당국의 이러한 우려가 기우가 아님을 방증한다.

 

그러나 진단이 타당하다고 하여 처방까지 적절한 것은 아니다. 지배구조 개선 및 이용자 보호를 위한 대안적 수단은 다수 존재한다. 사외이사 선임 의무화, 이해충돌 방지 장치의 법제화, 상장심사기구의 독립성 보장, 그리고 준비금 실시간 검증 체계 도입 등 소유 구조를 원천적으로 제한하지 않고도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헌법상 과잉금지원칙의 세부 요건인 '피해의 최소성' 원칙에 비추어 볼 때, 동일한 입법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덜 침해적인 수단이 존재함에도 가장 극단적인 지분 강제 매각을 선택하는 것은 위헌 소지가 다분하다.   

 

 

재산권 침해 및 소급입법의 위헌 소지 

본 사안의 가장 중대한 법리적 쟁점은 적법하게 취득한 재산권에 대한 사후적·강제적 처분 명령이다. 헌법 제23조가 규정하는 재산권 보장의 핵심은 국가의 자의적인 재산권 박탈을 금지하는 데 있다.

 

수년의 유예기간을 부여한다 하더라도, 기한 내 미처분 시 영업 인가를 취소하겠다는 조건은 실질적인 강제 매각 명령에 해당한다. 최근 국회입법조사처 역시 해당 규제가 재산권, 직업수행의 자유, 기업활동의 자유를 침해할 우려가 있으며, 소급입법 금지 원칙에 위배될 소지가 있음을 명확히 지적한 바 있다.

 

나아가 현행 법체계상 디지털자산거래소는 금융기관으로 분류되지 않는다. 비금융기관에 금융기관 수준의 지배구조 규제를 일괄 준용하는 것은 법 체계의 정합성을 훼손한다.

 

신규 진입 사업자에 대한 인가 조건으로 소유분산을 요구하는 것과, 기수행 중인 사업자의 적법한 보유 지분을 강제 처분토록 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글로벌 규제 동향과도 부합하지 않는다. 미국, EU, 일본 등 주요국 어디에도 거래소 대주주의 지분율 상한을 명시적으로 제한하는 입법례는 부재한다.

 

유럽연합(EU)의 미카(MiCA, Markets in Crypto-Assets)은 대주주의 적격성(Fit and Proper) 심사를 요구할 뿐 소유 한도를 강제하지 않으며, 미국의 코인베이스 역시 창업자가 지분 대다수를 보유한 채 나스닥에 상장하여 정상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규제의 선후(先後) 관계와 법치주의 

디지털자산거래소의 사회적 파급력이 확대됨에 따라 합리적 규제가 필요하다는 당위성에는 이견이 없다. 그러나 입법과 정책 추진의 '순서'가 전도되어서는 안 된다.

 

내부통제 기준의 법제화, 이해충돌 방지 체계 구축, 준비금 실시간 검증 의무화 등 실효적인 행위 규제가 선행되어야 한다.

 

이런 제도의 골격이 정착된 이후, 거래소에 공적 인프라로서의 법적 지위와 그에 상응하는 권리를 부여하는 과정에서 지배구조 개편을 논의하는 것이 타당하다.

 

권리 부여 없이 과도한 의무만을 선제적으로 강제하는 것은 법치주의의 근본 원리에 부합하지 않는다. 다가오는 디지털자산기본법 제정 논의에서는 이러한 법적 상식과 비례의 원칙이 준수되기를 기대한다.